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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31) 다수당을 무력화하는 국회의 장난질이 어김없이 계속되고 있다

최자영 | 입력 : 2024/05/01 [07:33]

김건희 특검에 함구하라고 한 정성호는 촛불 민심 배반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는 화해, 협치가 아니라 피를 먹고 자란다
“22대 국회 법사위원장에 국민 목숨이 달렸다”는 박찬대 발언,
국회가 다수당이 아니라 법사위원장이 독재한다는 징표
체계자구심사 기능 자체를 당리당략에 좌우되는 국회에서 없애고
추후 문제 발생시 공론화를 통해 사법기관에서 해결해야

민주당 의원 정성호가 대통령-야당대표 영수회담을 앞두고 김건희 특검은 의제로 올리면 안 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사실 영수회담에서 개인의 비리 혐의 관련한 특검을 반드시 의제로 다룰 필요는 없다. 경찰, 검찰, 법원 등에서 알아서 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 부인이라는 실세 앞에 그게 잘 안 되니, 특검 이야기가 나온다.

만일 정성호가 영수회담으로 다루지 않아도 국회에서 특검으로 처리하겠다는 뜻에서 한 말이라면 문제가 없는 것이겠다. 그러나 정성호의 이력으로 보아 그런 뜻에서 한 말이 아니라고들 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국회의 특검으로 제대로 다룰 의향도 없으면서, 영수회담에서도 말 나오지 않게 하려 했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다행히 영수회담은 일정한 의제 없이 그냥 진행하기로 해서 문제가 사라졌다. 그러나 정성호의 발언은 그대로 문제로 남는다. 단순히 영수회담의 의제 여부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원적으로 권세가 있는 개인의 비리를 그냥 묻고 가자는 것인지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만일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니, 당분간이 되었던 어떻든, 그냥 묻고 가자는 것이 정성호의 의도였다면, 영수 회담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김건희 특검을 하지 못 하도록 방해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정성호 발언 관련하여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하나는 내용, 다른 하나는 절차상의 문제이다. 내용에서 정성호는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을 외치는 촛불 시민의 함성을 외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에 대해 함구하자는 이가 윤석열 퇴진을 주창할 리는 만무한 것으로 보이므로, 정성호는 촛불 시민의 지향과 수고 자체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절차상의 문제로서, 정성호의 김건희 특검에 대한 함구 의견 제시가 개인적인 기호에 따른 것일 뿐, 공론을 거쳐 수렴된 결과인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그냥 내뱉고 다소간 강요하려 한다. 이런 이가 국회의장이 되면, 꼭 지금 국회의장 김진표 꼴이 나지 말라는 법이 없겠다. 김진표는 국회 다수당의 의견을 곧잘 뭉개버리고, 상임위 통과한 안건도 소수 국힘당 동의 없이는 본회의에 상정 못 한다고 번번이 국회 다수당의 힘을 빼는 데 기여했다.

정성호의 이런 발언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 SNS(사회적 소통망)에 올랐다. 한쪽에서는 이런 인간이 국회의장 되면 안 된다고 매도하고, 다른 쪽에서는 욕할 것이 없다고 옹호한다. 후자의 예에 속하는 ‘롯본기 김교수’라는 이가 정성호에 대해 다소간 부정적으로 발언하는 김민웅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정책대학원 교수)를 속된 말로 ‘들고 깠다’. 김민웅 교수는 ‘춧불 전진’에 속하는 동시에 목사이다.

‘롯본기 김교수’는 정성호가 이재명의 참모라고 전제하고, “국민이 이재명을 지지했으니, 이재명이 결정하면 그 말을 들어야 한다”, “김민웅은 정치하지 말고 촛불 시위나 하러 가라”, “교수와 목사는 학생이나 가르치고 목회나 할 것인지 왜 정치판에 나오냐”, “정성호가 김건희 특검을 (영수회담 주제로) 다루지 말라고 한 것은 영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요구하지 말하는 것” 등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제는 영수회담, 김건희 등 관련 사안이 아니라, 이 ‘롯본기 김교수’란 이가 정치와 촛불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한 점이다. 또 그는 학생과 신도를 가르치고 대하는 교수와 목사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보았다. 이런 시각은 촛불 시민의 함성에 귀막은 정성호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교수와 목사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국회에서 다 하겠으니, 다른 이는 신경 끄고 있으라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이재명이 결정하면 다른 이는 그저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거기다, 정성호가 이재명의 참모라고 ‘롯본기 김교수’가 빗대는 것을 보면, 정성호 말도 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시민 민초는 꿔다 놓은 자루같이, 이재명, 정성호 말만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롯본기 김교수’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재명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리가 없다. 이재명은 목에 칼을 맞았다. 사람들은 가만히 듣고 있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이재명 말을 듣고, 정성호 말을 듣겠나? 더구나 이재명 참모가 정성호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명 참모가 다 같은 의견을 갖는 것도 아니다. 결국, '롯본기 김교수'는 이재명의 이름을 팔아 정성호의 김건희 특검 함구 발언을 정당화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이 없는 것 같다.

정성호의 ‘김건희 특검 함구’ 발언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롯본기 김교수’의 억지 논리를 다소간 공유하고 있다. 촛불의 소리를 무시하고 국회에서 주관하겠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국회 자체가 자정 능력을 이미 상실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심각하다. 더 이상 국회만 믿고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교수든 목사든, 노동자든 가리지 않고 죄다 적극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다수당이 아니라, 국회의장, 법사위원장 등이 움직이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민주당 의원 박찬대가 “22대 국회 법사위원장에 국민 목숨이 달렸다”고 하기 때문이다. 법사위원장이 국회 입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국회 여야 의원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왜 선거제도 고쳐서 국민의 뜻을 그대로 국회에 반영해야 한다고 그 난리를 떨었을까?

선거제도 운운하기 전에 법사위원장이 좌지우지하는 비민주적 국회법 및 관행을 먼저 뜯어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다수당이 되어도 식물당으로 전락하는 이유가 바로 법사위원장이 다수당의 의사를 개무시하고 ‘마이 웨이(제멋대로)’ 훼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목숨이 법사위원장 1인에게 달려 있는 줄 알면서,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법사위원장에 국민 목숨이 달렸다”고 시민 민초를 보고 아우성만 쳐대는 박찬대가 더 하릴없고 허무하다.

국회의장 김진표도 걸핏하면, 의안 본회의 상정을 거부함으로써, 다수당의 의사를 깔고 뭉갰다. 그렇다면 국회의장이 전횡하지 못 하도록 국회에서 입법을 하면 된다. 그런데 국회는 국회의장의 월권을 제한하는 그런 입법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이유는 국회의장의 안건 본회의 상정 거부는 의장 혼자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힘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부에서 '샤이(드러나지 않은 숨은 세력)'들이 있어, 겉으로 대놓고 반대는 못 하지만, 김진표의 본회의 상정 거부를 속으로 지지하는 세력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진표는 속죄양이다. 겉으로 김진표를 탓하지만, 속으로는 잘한다고 응원하는 세력을 대신하여 매 맞는 역할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소수당이 죽어라 반대하는 법안을 마감 기일 눈앞에 두고 다수당이 통과시키려 할 즈음, 김진표가 해외여행 가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중대 법안을 통과시키자면 국회의장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때 해외에 나가기 때문에 본회의 개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 국회의장 부재시에는 권한대리를 세워야 한다. 그래야 국회가 마비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김진표가 권한대리를 세워 자신의 권력을 위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회자했다. 사태가 혼전을 거듭하던 당시, 필자 기억으로, 김진표는 결국 해외 출장을 가지는 않았다.

문제는 김진표가 해외출장을 갔는가 여부가 아니다. 가고말고를 떠나, 한국 국회가 구멍가게 같다. 엄한 법이 없고, 엿장수 가위 놀리듯, 의장이 제멋대로 한다. 그렇다면, 의장의 자의적 월권 가능성에 대비하여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의 해외츨장을 명분으로 국회 사무가 마비되는 일이 없도록 대비책을 강화하여 입법해야 한다. 권한대리를 세우는 것이 자의적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명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그런 입법에 손대지 않는다. 이것은 국회의장을 속죄양으로 하여, 그를 탓하면서, 정작 자신의 속셈과 민낯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진표 개인만 탓할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국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국회의장의 월권을 더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은 형식적으로 중립만 지켜서는 안 되고, 유능하게 방향을 틀어나가는 데서 지도력(리더쉽)을 가진 이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선동이 그러하다. 이런 논리는, 여태 다수당 위에 군림해온 김진표를 보고서도, 그 국회의장에게 한층 더 ’지도력‘을 발휘하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더욱 더 형식적 중립도 지키지 않고 다수당의 의사를 무시하는 국회의장이 나와야 한다고 부추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김진표가 바로 임기 종료 며칠을 앞두고, 법안을 하나 제시했다. ”입법의 질을 높이고 입법 지연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기능을 법제위와 사법위로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김진표의 주장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상임위 뿐 아니라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를 마친 안건도, 협치 운운하며, 본회의 상정을 거부하고 법안 통과를 훼방한 본인이 입법지연 운운하는 것이 적반하장이라는 점, 둘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늑장을 부린다고 해서, 그것을 ’사법위‘로 넘기면, 그로써 입법 지연이 방지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법제사법위원회의 기능을 법제위와 사법위로 나눈다고 해서, 그 관료 기구로서의 태생적 한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각 당의 이해에 따라 속셈이 달라지는 법안처리 속도가, 기구의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달라지게 되나?

오히려 김진표가 노리는 것은 관료적 기구를 더욱 중첩 신설함으로써, 법안의 처리를 더욱 어렵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각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새로 사법위를 만들어 체계자구심사를 맡기자고 할 것이 아니라, 체계자구심사 절차 자체를 없애면 된다. 문제가 생기면 추후 공론화하고 민원 등을 통해 사법기구에서 점검하면 된다. 그것이 국회 소수 위원회에서 틀어쥐고 앉아 미리 법안 통과를 방해하는 것보다 훨썬 더 공정하고 투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표가 부추겨 한 일이 또 있었다. 거기에 정성호가, 필자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국힘당과 연통하여 누구 못지않게 열심을 냈다. 작년(2003) 1월말 국회에서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모여 출범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들의 모임”이란 것이 그것이다. 총 111명 의원이 이름을 올린 이 모임의 출범 선언문에서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회로 돌아가자”, “대립과 혐오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을 닮은 국회로 바꾸자” 등의 구호를 내걸었다. 이 자리에서 김진표는 대통령 윤석열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치제도 개혁 없이 대한민국 미래가 없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이런 선언문은 좀 이상한 데가 있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정치개혁이라고 간판을 달아놓고서는 다름아닌 선거제도 개혁으로 초점을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대립과 혐오의 정치를 끝내는 것”이 “국민을 닮은 국회”인 것으로 예단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윤석열 탄핵, 김건희 특검을 외치는 촛불 시민은 ’국민‘에서 배제되는 것이 확실하다. “대립과 혐오의 정치”를 끝내려는 국회는 절대 이들을 닮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반의 국회는 두 가지 점에서 자가당착하고 있다. 한편에, “국민을 닮은 국회”를 외치면서 정치개혁을 빙자하여 선거제도를 고치자고 해놓고는, 다른 한편에 국회의장이 ’지도력‘이란 허울 좋은 포장하에서 월권하는 국회, 법사위원장이 “국민을 망하게 할 수도 있는 국회”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이 자가당착은 국민을 우롱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기에 근접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국회는 결국 그 나라 시민 민중의 수준을 반영하는 자화상이다. ’롯본기 김교수‘는 다수가 이재명을 뽑아놓았으니, 이재명 결정을 그대로 따르라고 종용한다. 그가 정성호를 이재명의 참모라고 띄우는 것을 보면, 정성호의 말도 그 같은 맥락에 두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뽑아놓고 그 말에만 맹종하는 것은 민주가 아닌 봉건적 심성이다.

민주란, 오히려 뽑힌 이가 행사하는 권력을 시민 민초가 감시하고 견제하는 제도이다. 독재에 항거하다 보면 가끔 피를 흘려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민주는 피를 먹고 자란다. 겁이 나서 움츠리면, 바로 권력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피를 흘리거나 노예가 되거나, 길은 양단간에 하나밖에 없다. 거기에 화해와 협치의 구호는 비겁하게 물러서고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하는 이의 징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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