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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⑯ 의원 이탄희의 ‘국민의 사랑받는 민주당’론은 국민의 정치적 발언권, 방어권, 저항권을 외면한 것

최자영 | 입력 : 2024/01/07 [19:22]

선거제도 거취가 정치개혁의 만병통치약 아니다
당 지도부가 결정하는 체제는 선거제도와 무관한 획일적 권위주의
의원 위에 군림하는 당 지도부, 민초 위에 군림하는 위정자 국회의 반민주적 봉건성
자신이 신뢰받는다고 믿는 이탄희의 자기 정당화는 나르시시즘적 도취

 

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선거법 개악을 경계하고 현행 준연동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다. 전자는 양당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 후자는 그나마 군소 정당의 국회 진입의 숨통을 틔우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이 신당 창당 혹은 그 국회 진입에 대해 방(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준석, 조국 등의 신당 창당이 그 예이다.(오마이TV, 오연호가 묻다, 이탄희의 좀 더 솔직한 고백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2023.11.12.)

이 같은 원론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론에서 이탄희의 논리 전개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다. 그것은 이탄희뿐 아니라 현재 대개 위정자들이 공유하는 것으로서, 국회 중심의 대의 과두정 체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했다는 점이다.

이탄희에 따르면, “선거법은 관례적으로 지도부가 결정하는 것”, “병립형 회귀를 주장하는 국힘당의 요구를 거부하고 현행 선거법을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공천도 좋은 사람으로 잘해야 한다”,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누가 찾아야 하나? 정치가 찾아야 한다. 그런데 싸우기만 하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기만 한다“, “반(反)윤석열 세력에 동조하는 당들이 모여 단일 대오를 구성하고, 연합정치를 하면 된다”, “정치만 바뀌면, 정치의 구도만 바뀌면 된다”, “20년 동안 750명이 물갈이 – 물갈이해도, 새 사람이 와도 안 된다”, ”구조가 썩어있으니, 구조를 깨야 한다“, ”(진작에) 진보 야당들이 교섭단체를 만들었다면 대선에도 안 졌을 것이다“ 등 나름 소신과 전망을 밝혔다.

이탄희가 제시하는 이 같은 소신에서 문제는, 첫째, “선거법은 관례적으로 지도부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 지도부의 결정이 선거법에만 한정된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자못 심각해진다. 국민이 과반수를 뽑아서 들여놓은 국회의원은 제각각이 헌법기관이다. 그만큼 독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과반 국회의원들이 지도부에 무조건 복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탄희의 논리대로라면, 만일 지도부가 이탄희가 원하는 현행 선거법 고수가 아니라, 병립형 회귀를 결정한다면, 그에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회의원의 위상을 공손하게 지도부의 결정 아래에 깔아놓으며 헌납한 이탄희의 민낯이 드러났다. 하릴없고 대책 없는 이탄희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지도부가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으나, 그 마지막 결정은 의원들이 스스로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이탄희가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탄희의 두 번째 문제는 오늘 한국이 당면한 질곡의 해결책을 국회 안에서만 찾고자 하는 것이다. “20년 동안 750명이 물갈이되었으나, 물갈이해도, 새 사람이 와도 안 된다”, “구조가 썩어있으니, 구조를 깨야 한다”, “(진작에) 진보 야당들이 교섭단체를 만들었다면 대선에도 안 졌을 것이다” 등 나름의 소신과 전망에서 더욱 그러하다.

좀 이상한 것은, 사람을 물갈이해도 안 되는데, 민주당 아닌 진보 야당들이 진입해서 연합하여 교섭단체 만들면 뭐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탄희는 진보 야당이 여럿 들어오는 것을 썩은 구조를 깨는 해결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그런가? 자칭 진보적인 1당의 내부에서 사람을 물갈이해도 썩은 구조는 깨지는 것이 아닌데, 진보 야당 여럿이 국회로 들어오면 썩은 구조가 갑자기 깨진다니?

사람으로 바뀌어도 안 되는 것이 다당제로 바뀌면 어찌 뭐가 되나? 군소 야당의 1당으로서 지금까지 정의당이 한 행적을 보면, 명색이 진보 야당이 한둘이 아니라 여럿 된다고 해서 썩은 구조가 치유될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지금 국회의장 김진표가 ‘협치’ 타령하는 것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일 것 같기만 하다. 실제로 북부 유럽 다당제 국가에서는 군소 정당 간 짬짜미 때문에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어 나름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도 있다.

이탄희는 “나도 바깥에서 볼 때, 사람이 바뀌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썩은 구조를 바꿔야 한다”, “민주당 180명이 다 이상한 사람이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와 싸우다 보니 단일 목소리를 내야 하고, 다른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당내 개혁세력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 분열 프레임(담론)에 걸린다” 등 취지의 발언도 했다.

이탄희는 윤석열 정부와 싸우려면 당내 다른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윤석열 정부가 없었을 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분열 프레임에도 안 걸렸나? 딱히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그전부터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당은 의견 통일을 유도해왔고, 이탄희가 스스로 고백하듯이, “관례적으로” 당 지도부의 결정에 승복해 온 것 같기 때문이다.

셋째 문제는, 썩은 구조를 깨는 주체가 국회 혹은 “정치”하는 사람(위정자)이어야 한다고 이탄희가 본 것이다. 그런데 그 국회는, 이탄희의 지론에 따르면, 지도부가 전횡하는 곳이고 당의 의견을 통일해야 하는 곳으로 드러난다. 그 통일의 기준이 무엇이며, 기준을 제시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십중팔구 이탄희가 보기에도 그 주체는 당의 지도부, 그 기준은 당 지도부의 결정이다. 여기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당의 의견을 통일해 나가는 민주적 과정이 없으니, 그저 지도부를 따라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당 지도부에 결정을 위임하는 이탄희는 이견을 가진 의원들 간의 치열한 토론의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 국회는 토론을 하는 곳이고, 토론이란 다양한 의견의 차이를 전제로 한 것이다. 결론은 다수결로 도출한다. 그러나 이탄희는 당 지도부를 전면에 부각함으로써, 국회의원들의 존재 이유 자체를 말살해버렸다. 자신이 본분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다른 의원들까지 하릴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탄희는 진보 야당이 여럿 국회에 입성하여 연합정치 하면 정치개혁 되고, 또 그것이 사회개혁으로도 이어질 것이라 본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회가 해온 짓거리를 보면 국회 자체가 썩은 구조를 스스로 깰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 것 같다.

이탄희가 스스로 고백하듯이, 사람을 갈아도 국회는 바뀌지 않았다. 그 같은 판에 진보 정당이 여럿 국회 입성한다고 해서 판이 바뀌나? 병립형 안 하고 현행 준연동제 한다고 해서 국회 자체가 가진 한계가 다 해결되나? 아니다. 당 지도부가 전횡하는 한 국회의 썩은 구조는 안 바뀐다. 그것은 선거제도와도 무관한 것이다. 선거제도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것이다.

이탄희는 국회가 스스로 자정 능력이 있다고 보고 있거나,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점에서 이탄희의 선거제도 만병통치론은 무책임하고 국민 민초를 기만 우롱하는 것이다.

이탄희는 정치 및 썩은 구조의 개혁을 “정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게는 오직 국회, 국회가 하는 정치가 있을 뿐, 국민 민초가 생략되어 있다. 그는 모든 권력의 원천으로서 국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거나, 국회의원은 정치의 근원적 주체가 아니라 위임받은 수탁자에 불과하다는 것 등, 초보적 원론조차 체화하지 못 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 한계는 국회에 거는 희망을 제시하는 데 그칠 뿐, 그 기대가 좌초했을 때의 견제장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전무하다는 점과 연결된다.

이탄희는 “이 일(병립형 개악 막고 현행 선거법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그냥 지나가면 제가 정치를 할 것 같지 않다”는 말도 했다. 이탄희는 선거법을 중요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 이탄희가, 회자하는 바에 의하면, 검사 탄핵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가짜 증거를 조작해내어 무고한 이를 유죄로 만들어도, 검사에 대한 탄핵은 이탄희에게는 별 중요성 없는 사안임에 틀림없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선거법일 뿐이어서, 그 선거법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탄희는 자신을 평가하여, “필요한 것에 집중해왔고, 그러다 보니 동지가 생기고, 신뢰를 받게 되었다”, “개혁했던 것은 없으나 계속 열심히 하다 보니 지금 여기 서 있다”, “필요한 것이니까 집중하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이탄희만 아니라 대개의 사람들이 자기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다소간에 남의 신뢰를 받게도 된다.

그런데 이탄희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다. 스스로 남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믿는 점이 그러하다. 검사 탄핵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이탄희가 선거법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때문에 남의 신뢰를 받는다고 스스로 믿기에 이르렀다. 이런 자기 정당화는 나르시시즘(자기중심)적 도취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탄희와 달리 검사 탄핵이 선거법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이탄희는, “어울려 지내는 것, 어울려 지내는 사람들이 아끼고 보살피고, 또 혼자서 해결 못 하는 것, 세상을 헤쳐나가기에 힘이 부족한 이들을 위해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실천하는 김대중, 노무현을 존중했다. 두 분 정신 계승해나가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우리 민주당의 주인이다”, “민주당이 든든하게 자리매김하고 자기 정체성도 확인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고. 세상을 바꾸는 연합정치, 박근혜 탄핵한 촛불 정치로 다시 한번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등 취지의 덕담도 했다.

여기서도 이탄희는 김대중, 노무현의 정신을 축소하여 국회 중심의 연합정치로 이해했을 뿐, 국회 울타리 너머로 그들이 못내 지향하고자 했던 지역분권에 대한 개념은 생략했다. 오직 국회 중심의 정치를 지향하는 이탄희는 결국 국민 민초로부터 정치적 발언권을 빼앗아 버림으로써, 정치의 무대에서 민초를 내쫓아버렸다. 직무 유기한 위정자에 대항해 능동적으로 저항권을 행사하고, 법률을 위반한 공직자를 탄핵하여 당장에 쫓아낼 수 있는 직접적 권력 행사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급기야 “민주당을 사랑하는” 비정치적 존재로 민초를 전락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민초의 수동적 입지는 스스로 의견을 개진, 토론, 결정하지 못 하고 당 지도부의 결정에 획일적으로 승복하는 국회의원들의 처지와 같다. 각 집단 구성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봉건적 권위주의가 곳곳에서 판을 치고, 그 권위주의에 편승한 이탄희는, 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간과하면서도,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더욱 매진함으로써 남의 신뢰를 얻기에 이르렀다는 나르시시즘적 자기 정당화에 매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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