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란 단일의지 집단은 실재하지 않는다
민주당 당직자 따로, 촛불 민초 따로
촛불이 들불같이 일지 못 하는 것은
촛불 내 신당 창당하려는 이들이 아니라
이들을 불순세력으로 배타하는 타자의 자유 억압의 근성
10.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민주당 진교훈의 승리로 끝났다. 국힘당 김태우 후보보다 17%p 이상 앞섰다. 민주당 측은 이번 승리를 다음 총선의 교두보, 서광의 한 징후로 해석하려 하고, ‘윤석열 정권을 심판했다’ 등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반대편에선 최악의 상대 후보(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사면받은 김태우)를 두고 고작 17%p 앞선 것이냐고 비아냥거린다.
진교훈은 “이번 선거가 상식, 원칙, 강서구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규정했다. 다른 한편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국민의 위대한 승리이자 국정 실패에 대한 엄중한 심판”,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 “국민의 위대한 승리이자 국정 실패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다.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등 취지의 발언을 했다.(프레시안, 2023.10.12)
진교훈은 “강서구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했으나, 이재명은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했으니 후자가 확대해석한 것이다. 또 진교훈은 “상식, 원칙의 승리”라고 했으나, 이재명은 더 넓게 “국정 실패에 대한 엄중한 심판”으로 확대해석했다.
사실 이재명의 확대해석도 전혀 사실무근한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징역형이 확정되며 구청장직을 상실했던 김태우가, 법원의 판결이 무색하게, 불과 3개월 만에 윤석열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피선거권을 회복하고, 바로 같은 직의 후보로 코를 디밀었기 때문이다. 이같이 상식의 궤도를 벗어난 일련의 조치가 윤석열 행정부 민낯의 일각을 보여준 것이라는 데 근거한 점에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이재명이 강서구청장 선거 승리를 두고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한 것은 독선이다. “국민”이라는 단일 의사 집단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위대한 승리’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김태우를 지지한 39.37%(40%에 근접)는 그 “국민”의 개념에 끼이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같이 상대를 무시하는 비민주적 개념의 오용은 다소간에 윤석열과 한동훈에게서 볼 수 있다. 윤석열은 걸핏하면 ‘국민’을 소환한다. “국민만 믿고 가겠다”는 의지의 천명이 그러하다. 그런데 윤석열의 “국민”은 1명이 될 수도 있다. “1명이 지지를 한다 해도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한동훈도 걸핏하면, “국민이 알 것이다” 혹은 “판단하실 것이다”란 취지의 발언으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윤석열과 이재명은 또 ‘통합’ 혹은 ‘단합’을 지향하는 점에서도 닮은 꼴이다. 요즘은 부득이한 상황에서 빈도가 확 줄어들었으나. 대선 전후로 윤석열은 ‘통합’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같이 이재명도 당의 ‘단합’을 외치고 나섰다.
이재명은 강서구청장 선거결과를 두고,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의 각성과 민생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 “우리 앞에 거대한 장벽이 놓여 있다. 우리 안에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부족하고 억울한 게 있더라도 잠시 제쳐두고 저 거대한 장벽을 함께 손잡고 넘어가자”라고 했다.
이재명의 발언에서 제시되는 “정치의 각성”, “민생회복”, “거대한 장벽”, “우리 안의 작은 차이”, “부족하고 억울한 게 있어도 잠시 제쳐 두자” 등은 하나같이 죄다 모호한 개념, 비현실적 요구와 제안들로 가득하다.
“정치의 각성”, “민생회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최근 법원의 결정으로 구속을 면한 이재명이 “정기국회 끝날 때까지 정쟁을 멈추자”고 윤석열에게 제안했다.
이재명이 말한 “거대한 장벽”은 무엇일까? 윤석열을 말하는 걸까? 윤석열 아류들이 이미 국회 안에 득실거리고 있는 판에, ‘거대한 장벽’의 제거란 애초에 불가능한 수사(헛소리)인 것 같다.
또 “우리 안의 작은 차이”, “부족하고 억울한 게 있어도 잠시 제쳐 두자”라고 했으나, 그 차이는 정말 ‘작은 것’이며, 그 억울함은 잠시라고 참고들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공천권을 두고 밀고 밀리는 기 싸움은 “작은 차이”가 아니며, 그 필살기로 서로 양보하지 않고 ‘제로섬(다 같거나 다 잃거나)’ 게임으로 치닫게 될 전망도 배제하지 못한다. 강서구청장 선거 승리 직후 검찰이 당대표를 기소한 것도 반드시 윤석열이나 국힘당 탓만 할 일이 아니다. 안에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지향하는 당차원의 “우리 안”의 단합은 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외적으로 배타성을 갖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고하여 촛불을 들어 올리는 민초는 각종 민주당 당직자와는 별개의 카스트(계급)를 이룬다. 혹여 민주당 당직자들은 저항의 촛불이 아니라, 그 당대표 같이, ‘정쟁’을 중단하고 윤석열을 만나 담판함으로써 ‘민생’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서울에서는 필요에 따라 촛불집회에 민주당 의원들이 가끔 합세하는 경우가 있으나, 집회 규모가 취약한 지방의 풍속도는 사뭇 다르다. 민주당 행사가 있고 바로 같은 장소에서 촛불집회가 이어져도 민주당 당직자들은 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썰물같이 쏵 빠져나가 버리고, 촛불집회를 외면한다는 소문이 회자한다.
윤석열, 한동훈같이 이재명이 즐겨 소환하는 “국민”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거리에는 성난 민심의 촛불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국민”의 획일적 개념 속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다. 촛불은 민주당과도 이질적인 데가 있고, 또 자체 내부에서도 분열한다.
배타적 단합을 추구하고, 자신만이 이른바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있다고 자처하는 민주당은 촛불 내 신당 창당을 극도로 경원한다. 지금 촛불 민초의 단톡방에서는 자기검열이 한창이다. 신당[일례: 국민주권당(촛불전진)] 창당하려는 이들을 불순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분열을 목도하면서도 가타부타 입장표명 없이 방관하는 민주당은 일면 비겁하다. 침묵함으로써 신당 창당을 매도하고, 그 동력과 자유를 억압하는 데 편승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자에 대한 억압은 조만간에 자신을 얽어매는 족쇄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촛불 민초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편에 단합을 지향하는 민주당(혹은 당직자)이, 다른 한편으로 다소간 촛불 민초들 자신이 서로 타자의 자유를 억압하는 배타적 근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정치적 창당의 자유를 억압하느라 촛불은 자체의 힘을 소진하게 된다. 신당 창당하려는 ‘불순’한 이들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불순’한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이들의 비민주적 근성 때문에 촛불행동의 수고는 한갓 물거품으로 귀결될 수도 있겠다.
정치는 기득정당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신당 창당의 문턱을 낮추어 새 피를 수혈받아야 한다. 전국정당만 정당이 아니다. 지역정당을 제도화하여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개방해야 하겠다. 민주당이 겸손해지려면, ‘민주당’이 이른바 ‘국민’을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접어야 한다. 또 이재명이 천명한 바, 민생의 도모는 윤석열 혹은 국힘당과의 ‘정쟁’을 중단함으로써 도모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윤석열이 들인 청와대 이전 비용이 몇 조에 육박하고, 추경에서 해외출장비가 다시 기백억 늘었다고 한다. 또 윤석열 행정부는 핵오염수가 안전하지 못 하다는 연구결과를 은폐했다는 사실이 국감장에서 드러났다. 그렇다면 정부는 국민의 정보접근권을 차단하고 국민안보를 개무시한 것이다.
차제에 일본은 이달 초 제2차 핵오염수 방류에 돌입했으며,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산 해산물 가공품을 계속 수입하고 있으며, 금수조치할 염이 눈꼽만큼도 없는 가운데, 일본 활어차가 한국 부두에 와서 수만 톤 해수를 몰래 방류했다는 소문도 회자한다. 이 모든 것들이 시급한 민생 현안들이고, 현재로서 다소간의 갈등 없이 해결될 것 같지 않다.